원외처방 약제비 돌려줘라
최근 의료계에 큰 파장이 예상되는 명쾌한 법원 판결이 있었다. 법원은 국내 굴지의 대학병원과 한 개원의가 건강보험 재정지출의 건전성 확보에 기여하고 있다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을 상대로 과잉처방 등을 이유로 의료기관에서 환수한 원외처방 약제비는 모두 되돌려 줘야한다고 판결했다. 의약분업 이후 건보공단으로부터 원외처방 약제비를 환수당한 의료기관의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여 큰 파장이 예상된다.
재판부 판단의 핵심은 건보공단이 의료기관으로부터 약제비용 금액의 징수처분을 내릴 아무런 법률상 근거가 없으며, 요양급여 기준보다 의사의 재량권이 우선한다는 것이다.
이는 의사는 진료를 행하면서 환자의 상황과 당시의 의료 수준, 의사 자신의 전문 지식과 경험에 따라 적절하다고 판단된 진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면서 그것이 합리적인 재량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닌 한 진료 결과를 놓고 어느 하나 만이 정당하고 다른 조치에는 과실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결(2006. 6. 25)을 인용했다.
선고 직후 의료계는 일제히 당연한 결과라며 환영하고 있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은 부당한 판결이라고 주장하며 항소의 뜻을 밝혔다. 공단은 특히 이 판결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고 앞으로 의사의 과잉처방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면서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는 형식적인 법 논리에만 치우친 부당한 판결이며 공익에도 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같은 비판은 이번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우려는 이해할 만하다. 판결 내용에 따르면 앞으로 보험공단은 수백억원의 약제비를 병원에 돌려주어야 한다. 당연히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보험공단이 자초한 일이다. 병원은 원래 받아야 할 진료비를 돌려받은 것에 불과할 뿐, 보험공단에 손해를 가한 것이 아니다. 이 판결로 인해 과잉처방이 조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맞지 않다. 의사들은 원외처방전을 발행할 때 약을 많이 처방했다고 해 처방료를 더 받는 것이 아니다. 의사는 약을 처방할 뿐이고 그로 인한 약값은 병원이 아닌 약국에 지급되는 것이기 때문에 의사는 약 처방으로 인해 어떠한 이득도 취할 수 없다. 오히려 요양급여기준에 반하는 약 처방을 할 경우 진찰료 중 처방료에 해당되는 부분이 삭감당해 그만큼 손해를 입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진료비 삭감이나 현지조사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의사들이 이 같은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요양급여기준에 위반해 약 처방을 한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의사들은 환자에 대한 관계에서 임상 수준에서 요구되는 최선의 진료를 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최선의 진료를 위해서 의학적으로 필요한 약을 처방했는데 그것이 요양급여기준에 어긋난다는 이유 만으로 약값을 처방한 의사로부터 환수한다면 이는 의사의 진료권과 재산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이번 소송의 핵심은 \'의사의 진료나 처방행위가 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에 구속되는가\'하는 점이다. 개원의가 거대권력인 건보공단을 상대로 4년에 걸쳐 외롭고 힘든 싸움을 계속했던 이유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합병원들이 소송에 참여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의사의 진료행위는 요양급여기준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가 의학적 판단에 따라 필요한 약을 처방했다면 그것이 비록 요양급여기준에는 위반됐다고 하더라도 불법행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소송이 최종 완료돼 원외처방 약제비를 환수 받는 것이 의료기관이 재정적으로 도움을 받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앞으로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소신 진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심평원의 요양급여기준에 따라 다소의 획일적인 진료만 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의사의 전문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고려해 환자들에게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는 물꼬를 연 판결이다. 매우 당연하지만 참으로 다행한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이운기 울산중앙병원 부원장·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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